(전시 - 서울)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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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 서울) 박노해 사진전 '하루'展
  • 장경숙<문화기자>
  • 승인 2019.10.30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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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하루 살아왔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 박노해 -

여명이 밝아오면 에티오피아의 여인들은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오고 버마의 소녀들은 아침 들꽃을 꺽어 성소에 바치며 하루를 시작한다. 대지에서 자기만의 리듬으로 노동하고, 햇살이 눈부신 날 아이들은 만년설산 아래서 야외 수업을 하고, 축구를 하고 책을 익고 야크를 몰다 귀가하는 아빠를 마중하는 오후.

노을이 물들면 "얘야, 밥 먹고 내일 또 놀으렴." 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한 밥상에 둘러 앉아 식사를 하고, 향긋한 짜이를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우는 밤. 그리고 폭음이 울리는 땅에서 오늘도 살아 남았음에 감사하는 그런 하루까지.

 

 

 

 

"아침에 눈을 뜨면 햇살에 눈부신 세상이 있고 나에게 또 하루가 주어졌다는 게 얼마나 큰 경이인지."(박노해)

지난 20여년간 지상의 높고 깊은 마을 속을 걸어온 박노해 시인. 그가 티베트, 볼리비아, 파키스탄, 인디아, 페루 등에서 담아온 37컷의 작품이 '정통 흑백 아날로그 인화'로 전시된다. 세계의 하루를 만나며 내가 살고 싶은 하루를 그려보는 시간, <하루>展에 초대한다.

 

여명에 물을 긷다 Lalibela, Ethiopia, 2009 박노해
여명에 물을 긷다 Lalibela, Ethiopia, 2009 박노해

 

여명은 생의 신비다. 밤이 걸어오고 다시 여명이 밝아오면 오늘 하루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하루의 시작은 먼 길을 걸어 물을 길어 오는 것. 이 물로 밥을 짓고 몸을 씻고 가축의 목을 축이리라. 짐을 진 발걸음은 무겁고 느리지만 이 삶의 무게에 사랑이 있고 희망이 있다며 기꺼이 그것을 감내할 힘이 냉겨나느니. 나는 하루하루 살아왔네. 감동하고 감사하고 감내하며.

 

 

 

찻잔에 햇살을 담아 Palaung village, Kalaw, Burma, 2011 박노해
찻잔에 햇살을 담아 Palaung village, Kalaw, Burma, 2011 박노해

 

높은 산마을의 일과는 '해 뜨기 전에'이다. 여명 속에서 물을 긷고 나물을 따고 가축을 먹이고 마당을 쓸고 오늘 할 일을 훌쩍 해내버린다. 이윽고 태양이 떠오르면 몸을 씻고 차를 끓인다. 모닥불 연기에 물고기가 고소하게 말라가고, 식구들끼리 찻잔을 건네며 담소를 나누는 아침. 어둠 속을 떨며 걸어 온 인생은 알리라. 아침에 눈을 뜨면 햇살에 눈부신 세상이 있고 나에게 또 하루가 주어졌다는 게 얼마나 큰 경이인지. 햇살을 담은 차를 마시며 서로의 웃는 얼굴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안데스 고원의 감자 수확  Maras, Cusco, Peur, 2010 박노해
안데스 고원의 감자 수확 Maras, Cusco, Peru, 2010 박노해

 

인류의 '감자 종갓집' 안데스 고원에서 마을 두레 노동으로 감자 수확을 하는 날. 오늘 순번인 밭 주인은 그저 고맙다고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고 서로의 힘을 나눌 수 있어 고맙다고 이렇게 모여서 얼굴만 봐도 좋다고 연신 옥수수 막걸리 치차를 돌린다. 만년설산 시린 바람에 땀방울을 씻으며, 젊은 남녀의 노랫소리 이야기 소리 풋풋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8천년 전 안데스에서 최초로 재배된 감자는 세계의 감자가 병들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의 씨알'처럼 나누어졌다. 오늘 세계가 난파산처럼 휩쓸리며 앞을 잃어도 저 높은 곳의 '희망의 씨알'이 살아있고 그것을 지켜가는 '젊은 전위들'이 살아있다면, 그러면, 아직 '우리의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아빠가 돌아 올 때 Huanuni, Oruro, Bolivia, 2010  박노해
아빠가 돌아 올 때 Huanuni, Oruro, Bolivia, 2010 박노해

 

볼리비아 우아누니 광산의 지하 갱도 속으로 어젯밤 다이너마이트를 가득 지고 들어간 아빠. 딸들은 광산 입구까지 달려가 아빠를 맞이한다. 작은 새처럼 지저귀며 아빠의 팔에 매달리는 딸들. "오늘도 덕분에 무탈했네요. 딸들이 제 수호천사라서요. 하하하. 매일 광산으로 갈 때마다 기도하죠.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자기 인생을 살고 타고난 걸 다 꽃피울 수 있다며, 네 그거죠. 나는 늘 한번 웃고 지하 막장으로 들어가죠." 이 무정한 세계에서 서로에게 온 존재를 기울여 가만가만 들어주고 얼굴을 바라봐주는 웃음. 괴롭고 불안한 어둠 속에서 사랑, 사랑이라는 자기 헌신으로 길어 올린 웃음.

 

 

짜이를 마시는 시간 Barsat village, Gaguch, Pakistan, 2011 박노해
짜이를 마시는 시간 Barsat village, Gaguch, Pakistan, 2011 박노해

 

눈부신 만년설산에 둘러싸인 높고 깊고 고적한 국경마을 가쿠치. 어둠이 내리면 별빛만 눈에 시린데, 여기 삶의 진경은 이제부터다. 집집마다 짜이 끓이는 향기가 번지며 연분홍빛 아몬드 꽃처럼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양털을 잣고 자수를 놓고 나무를 깍으며 아빠는 야크를 물어간 늑대를 잡은 이야기, 엄마는 이웃집 결혼 준비를 도운 이야기, 누나는 아프가니스탄 친구와 정세 이야기, 막내는 학교에 새로 온 선생님 이야기. 늘 보는 가족끼리 저리 할 이야기가 많을까. 온 몸으로 살아낸 하루는 나만의 이야기를 남긴다. 국경의 밤은 길고 이야기는 끝이 없다.

 

 

 

지역 - 서울

장소 - 라 카페 갤러리

​기간 - 2019. 06. 22(토) ~ 2020. 01. 10(금)

시간 - 매일 11시 ~ 22시 / * 월요일 휴무

요금 - 무료

​문의 - 02) 379-1975

관련싸이트 - https://blog.naver.com/racafe/221557623466

 

본 기사와 사진은 공개된 자료들을 공공의 목적으로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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